유럽은 전략적 방위 자율성을 갈망하지만, 회원국 간의 깊은 내부 분열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제한된 핵 능력, 방산기술 협력의 불협화음, 그리고 미국 기술에 대한 심각한 의존도는 유럽의 방위 독립성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들입니다.
제한적인 핵 억지력과 공유의 한계
프랑스의 290기와 영국의 225기 핵탄두는 미국의 5,428기에 비해 1/18 수준에 불과합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 핵억지력을 유럽 공동 방패로 확대” 제안은 독일 의회방위위원회의 “작전통제권 논란 불가피” 경고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됩니다. 이 갈등은 유럽 내 핵심적 안보 이슈에 대한 회원국 간 근본적 견해 차이를 드러냅니다.
미국이 독일에 B61-12 핵폭탄을 배치하며 NATO 핵공유를 강화하는 동안, 폴란드는 자국 영내 핵배치를 요구하며 친미 노선을 택했습니다. 유럽 자체 핵억지력 없이는 외교적 발언권을 잃을 것이라는 이탈리아 국방연구소의 경고는 심각하지만, 해결책에 대한 유럽 내 합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방산협력의 좌절: 국가 이기주의의 현실
유럽의 분열은 6세대 전투기 개발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의 SCAF 프로젝트는 엔진 기술과 레이더 시스템 개발 주도권을 둘러싼 기업 간 갈등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각국이 자국 방산업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공동 목표는 후순위로 밀려났습니다.
영국은 대조적으로 ‘템페스트’ 전투기 개발을 위해 일본과 이탈리아와 협력하는 초국적 접근을 택했습니다. 유럽방위청의 지적처럼, “단일 시장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유럽 방산 예산의 70%가 국가별 중복 투자“되는 현실은 유럽 전체의 방위 역량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술 종속: 방위 자율성의 치명적 약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럽의 미국 기술에 대한 종속입니다. 네덜란드 국방연구소의 보고서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 유럽 전투기 엔진의 83%가 미국 GE사 라이센스 생산이며, 정밀유도무기 소프트웨어의 91%가 미국 기술 기반입니다.
유럽의 군사위성 ‘아이리듬’이 미국 스페이스X 발사체에 의존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이러한 기술적 종속의 심각성을 상징합니다. EU가 2027년까지 AI 군사 적용에 투자하는 27억 유로는 미국 예산의 1/4 수준에 불과해, 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선 유럽
유럽의 방위 자율성은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닌 전략적 합의의 부재에 직면해 있습니다. 프랑스의 핵확장주의, 독일의 기술민족주의, 폴란드의 대서양주의가 충돌하는 가운데, ‘유럽방위연대세’ 제안은 14개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스탠퍼드대학 시뮬레이션이 보여주듯, NATO 해체 시나리오에서 유럽은 러시아의 기동전 도발을 저지하지 못합니다. 유럽의 군사적 자립은 이제 수사적 논의가 아닌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극우정당의 득세는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럽은 진정한 방위 자율성 확보를 위해 국가 간 깊은 신뢰를 구축하고 공동의 전략적 비전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냉전 시대에 또 다른 종속자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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